[영화 '족벌' 플러스]② 이명박 '프레스 프렌들리'의 탄생과 족벌언론
우리 사회가 당면한 핵심 과제가 '언론개혁'임을 보여주는 뉴스타파 신작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가 온라인(IPTV 등)과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입니다.
뉴스타파는 영화 '족벌'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족벌 관람 길잡이'로 <조선·동아 '누가누가 잘하나'> 시리즈에 이어 <족벌 플러스> 시리즈도 연재합니다. <족벌 플러스>는 영화가 다루는 시대 상황, 중요 사건을 보다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중요한 에피소드를 기사로 전해 드립니다. 오늘 두번째 순서로 MB표 언론 정책인 '프레스 프렌들리'의 탄생 배경과 족벌언론의 성장과정을 뉴스타파가 입수한 대통령 기록물을 통해 분석했습니다.
1. 일요일 오후, 운동복 차림으로 깜짝 방문 “밥은 먹었나?”
2008년 3월 30일(일요일) 오후 6시.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 대통령이 나타났다. 방금 테니스를 친 뒤 운동복 차림에 파란색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출입기자들과 악수를 청하며 ‘밥은 먹었는지’, ‘퇴근은 언제 하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묻는다. 간간이 특유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약 30분 동안 머물다 대통령은 떠났다. 다음날 언론은 기자실을 깜짝 방문한 대통령 동정을 보도했다.
이명박은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출입기자와 접촉을 즐겼다. 기업인과 서울시장 시절부터 몸에 밴 습성이었다. 그에게 출입 기자실은 ‘기업 홍보실’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그에게 기자는 치적을 널리 퍼뜨려 줄 ‘홍보맨’에 불과했다. 2009년 이명박은 해외순방 기자단과 만찬에서 "오래 출입하면 전부 같은 편이 되는 게 아니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2008년 3월 30일, 취임 한달 가량 지나고 운동복 차림으로 춘추관 기자실에 나타난 이명박
역대 대통령마다 다양한 언론 정책과 철학을 펼쳤지만, MB처럼 기자와 스킨십을 많이 하며 언론을 각별하게 챙겼던 이는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은 “프레스 프렌들리 (PRESS FRIENDLY)”로 상징된다. 특히 조중동으로 대표하는 족벌, 재벌언론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청와대와 정부 핵심 자리에도 조선과 동아일보 기자 출신 또는 족벌언론의 사주 일가가 포진했다. 언론을 담당하는 주요 보직에 집중됐다. ▲ 이명박 정부 초대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위원) ▲ 초대 대변인과 홍보수석비서관 이동관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위원) ▲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김병국( 김성수의 손자, 고려대 교수) ▲ 문화체육부 차관 신재민(조선일보 부국장)이 발탁했다. 사실상 언론과 권력은 한 몸이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조선일보 출신 기자들은 이후 공천을 받아 잇따라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진성호 (조선일보 기자, 이명박 대선후보 인터넷본부장) ▲김효재 (조선일보 부국장, 논설위원, 이명박 후보 언론특보, 청와대 정무수석) ▲최구식(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등이다. ▲김형오(2008년 전반기 국회의장)도 짧았지만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다.
2. '프레스 프렌들리’의 탄생의 비밀을 보여주는 대통령 기록물
이명박 정부가 남긴 대통령기록물 가운데 비공개됐다가 공개된 기록물은 약 34만 4천 건이다. 이 가운데, 언론 관련 기록물은 수만 페이지에 이른다.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국책과제 비서관실까지 다양하게 문서를 생산했다.
뉴스타파는 이명박이 대통령 재임시절 남긴 대통령 기록물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언론 정책으로 ‘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유가 무엇인지,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수구 족벌언론에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던 이유를 분석했다.
▲ 이명박 대통령 기록물 중 언론관계 문건
이를 통해 참여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이유가 무엇인지, 2000년 이후 언론정책의 정치권력(대통령)과 언론권력(조선 등 족벌언론)의 균형추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족벌언론이 언론권력으로 성장하며 위력을 발휘하는 기제는 무엇이었는지 추적했다.
3. 첫 출입기자 만찬간담회 첫 질문을 확보한 이는 조선일보 기자
2008년 3월 6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열흘이 지났다.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 첫 만찬 행사가 준비됐다. 저녁 7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영빈관에서 열렸다. 사회는 MBC 기자 출신의 김은혜 부대변인이 맡았다. 행사 목적은 “PRESS FRIENDLY 차원에서 VIP와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만찬 추진”이었다.
▲ 비공개였다가 공개로 분류된 이명박 대통령 기록물 중
당초 이날 만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각 출입 언론사별로 1명씩 제한하는 방안이 고려됐지만, 대통령과 출입기자 사이의 첫 행사임이 강조되면서 판이 커졌다. 언론사별 1진 기자는 물론 2진 기자까지 참석하는 방안이 채택됐다. 이렇게 해서 중앙일간지 61명, 지역일간지 38명, 방송사 37명 등 137명이 초대를 받았다. 청와대 측에서는 유우익 대통령실장, 경호실장, 7개 수석, 대변인, 제1부속실장 등이 총동원됐다. 저녁 7시 1분에 맞춰 만찬이 시작됐다. 부대변인 김은혜는 이런 멘트를 준비했다.
“대통령께서 지나 2월 27일 춘추관을 방문하셔서 가급적 빠른 시간에 기자여러분을 다시 만나겠다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또 누구보다도 먼저 여러분을 만나는 PRESS FRIENDLY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김은혜 당시 청와대 부대변인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씨의 인사와 건배 제의, 그리고 식사가 진행됐다. 메뉴는 설렁탕이었고 테이블마다 소주와 맥주가 준비됐다. 이명박은 사진기자단으로부터 대선 사진집을 선물 받고 환하게 웃었다. 대통령이 테이블을 돌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화기애애했다. 저녁 8시 식사를 마칠 무렵, 출입기자 4명의 질문시간이 왔다. 중앙기자단, TV 사진기자단, 방송기자단, 지방기자단 등이 사전에 배정받았다.
출입기자단은 청와대 측과 질문할 기자, 질문 순서까지 행사 하루 전날 미리 합의해 정했다. 이날 행사를 준비하며 작성했던 대통령 기록물에는 질문을 배정받은 출입기자들의 질문 요지도 남겼는데, 지방기자단을 대표한 기자의 질문은 이렇다.
“대통령이 되셨는데, 실제로 “대통령이 되었구나” 하는 느낌은 언제 가지셨는지? 그 순간의 기분은? 청와대 오셔서 행복하신지? 그리고 이전 생활과 지금 청와대 생활에서 변화가 있으신지?”
- 00지방신문 청와대 출입기자의 사전질문
이날 이명박 대통령에게 첫 번째 질문을 배정 받은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였다. 이 기자는 이후 TV조선 보도본부장를 거쳐 현재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승진했다. 이 출입기자는 한달 뒤, 이명박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때도 한국기자 두 명에게 주어진 질문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3월 6일, 대통령 기록물을 통해 확인한 조선일보 출입기자의 질문 요지는 이랬다. “청와대에서의 첫날 밤 소감? 성급한 질문입니다만 기업인, 시장에 이어 대통령까지 되셨는데, 대통령 퇴임 이후의 꿈은?
▲ 대통령 기록물에서 확인한 출입기자단 질문
뉴스타파는 당시 이 질문을 던진 조선일보 기자에게 첫 번째 질문자로 배정받은 경위가 무엇인지, 질문의 내용까지 청와대 측과 사전에 합의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노코멘트 하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명박이 뇌물과 횡령 혐의로 17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중인 현실을 비춰볼 때 13년 전 조선일보 기자가 던진 질문의 내용이 참으로 얄궃게 다가온다. "대통령 퇴임 이후의 꿈"
4. 이명박 청와대가 그린 ‘최근 언론논조 지형도’
이명박은 족벌언론 가운데 특히 조선일보에 신경을 많이 썼다. 대통령 취임 전에는 대단히 우호적이었는데, 취임 이후 조선일보의 비판 논조가 부쩍 늘었다. 반면 중앙과 동아일보는 우호적이었다.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조선일보의 비판 논조 강화”를 분석하는 문건을 작성할 정도였다. 이는 뉴스타파가 찾아낸 대통령 기록물 <취임 한달 언론 보도 분석>(2008.3.24 대변인실 작성)에 자세히 나온다.
뉴스타파는 이명박 대통령이 남긴 34만 건이 넘는 분량의 대통령 기록물 중에서 2008년 취임 초기, 청와대 대변인실이 작성한 한 장의 언론 지형도 그림을 찾아냈다. 제목은 <최근 언론논조 지형도>, 2008년 3월 24일 작성했다. 이명박이 취임한지 딱 한 달만이다.
언론사별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얼마나 우호적인지, 또 영향력의 크기가 어떤지를, X축과 Y축 그래프 위에 그렸다. X축으로 정부에 우호적/비판적, Y축으로는 영향력 높음/낮음을 표시했다.
조선일보의 위치가 눈에 띈다. 영향력은 가장 높은 곳에, 그리고 족벌언론 중에서는 덜 우호적인 위치에 있다. 그 다음, 동아일보의 위치가 의미심장하다. 중앙일보와 함께 조선일보에 비해 영향력은 조금 낮지만, 훨씬 더 우호적인 위치에 그려놨다. 한겨레와 경향은 정부에 비판적이지만 조중동에 비해 영향력이 좀 낮게 평가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뉴라이트계열의 인터넷언론은 성향은 다르지만, 영향력은 모두 낮게 그렸다.
▲ 2008년 3월 작성된 이명박 대통령 기록물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영향력이 큰 언론사는 조선일보, 가장 우호적인 곳은 동아일보임을 보여준다. 이 같은 이명박 청와대의 언론사 평가는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 것일까?
5. “자유언론을 탄압하는 행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족벌언론이 이명박을 향해 언론친화적인 정책을 하도록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2008년 2월 24일이다. 이날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편집인으로 있는 변용식이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앞에서 따박따박 말했다. 이명박의 언론 정책은 전임자인 노무현의 그것과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장'이었다.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이명박 대통령 취임 하루를 앞두고,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언론단체 대표와 현직 언론인을 만났다. 이경숙은 취임 첫 기자회견에부터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를 언급했다. 이날 간담회는 언론인들 앞에서 '언론 친화 정책'을 확약하는 자리였다. 인수위 측은 이경숙 위원장,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 (동아일보), 이동관 대변인(동아일보), 김효재 인수위 자문위원 (조선일보), 박형준 인수위원 (중앙일보) 등이 나왔다.
당시 김경호 기자협회장은 "(언론사 기자) 대선배들 계시니까 감회가 새롭다"며 "어느 쪽이 인수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선,후배들이 양 옆에 있으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간담회 자리의 친근함을 나타내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이명박 정부와 언론 간의 '유착'을 보여주는 ‘언중유골’이 아닐 수 없다.
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이동관은 “(프레스) 프렌들리니 웃으면서 (하자)"고 말하자, 변용식 조선일보 편집인은 "아직 (기자실) 복원이 안 돼 웃으면 안 되는데…"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미디어 오늘, 2008년 1월 24일)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기자실 통합정책을 꼬집는 변용식의 독설이었다. 그만큼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에게 노무현의 언론개혁은 못마땅하고 괘씸한 것이었다. 간담회 다음날 대한민국 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이날 이후 이명박의 언론 정책은 노무현의 그것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6. “식민지 독재정치 하에서 썩어빠진 언론”
이경숙이 변용식을 만나기 이틀 전인 2008년 2월 22일,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재임 마지막으로 청와대 기자단과 송별 오찬을 했다. 소주 ‘폭탄주’를 건배하고 잔을 한 번에 비운 노무현은 출입기자들에게 말했다. 언론개혁을 마무리 하지 못한 채 떠나는 미완의 개혁에 대한 회한이 묻어있는 말이었다.
“지난 5년 간 무척 힘들었는데 이제 일반 국민으로 돌아간다”며 “제일 하고 싶은 전환은 마주 서서 대결하고 승부를 항상 맺어 나가야 되는 승부의 세계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부에 느낌이 안 좋아 화장을 싫어했는데 이젠 화장을 안 해도 된다”며 “대통령을 그만두면 제일 좋은 게 뉴스를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언론과) 마주 보고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 어딘가 방향을 함께 가는 관계로 전환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머리도 적게 쓰고 사적으로 살아 보고 싶은데…. 어려울 것 같다”는 말도 했다.
(2008.2.23 중앙일보)
정치인 노무현에게 수구 족벌언론은 긴장의 관계이자 개혁의 대상이었다. ‘숙명적인 대척’에 설 수밖에 없었다. 2019년 뉴스타파가 찾아내 공개한 노무현의 친필 메모에는 족벌언론에 대한 그의 진솔한 심경이 잘 배어있다.
▲ 2007년 수석보좌관회의 중 남긴 노무현 친필메모
▲ 2007년 3월 대통령 보고를 받는 중 남긴 노무현 친필메모
대통령님 생각이 '대통령 권력도 강한 권력이지만 언론 권력도 굉장히 강한 권력이다. 이 강한 권력 두 개가 유착하거나 결탁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차라리 서로 긴장관계를 갖고 있어야 우리도 몸가짐을 똑바르게 하고 그런 긴장관계에 서 있을 때, 똑바르게 할 수 있다' 이런 소신이 굉장히 강하셨던 편이죠.
- 윤태영 노무현 청와대 대변인
7. “건달 정부, 無事故(무사고)기도하는 수밖에…"
족벌언론에게 노무현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쏟아낸 노무현 관련 기사 가운데 일부는 언론 비판의 범위를 넘는 수준이었다. 증오가 서린 악담과 저주에 가까웠다.
노무현은 기득권 주류세력의 바깥에 있는 ‘주변인’이었고, 상고 출신의 '비주류'였다. 이렇게 ‘깜냥이’ 안 되는 노무현이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게 불편했던 것일까. 대통령으로서 추진했던 언론정책이 언론권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지역 구도를 깨고, 예측을 깬" 그의 당선이 ‘원죄’로 작용했던 것일까. 대통령이 되고부터 족벌언론의 공격은 더 집요해졌다.
2003년 7월,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공개 자리에서 “제 상식으로 (노무현이) 대한민국 대통령인가?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말했고, 이를 족벌언론은 대서 특필했다. 보수정당과 족벌언론 사이 ‘권커니 잣거니’식 여론 만들기였다.
▲ 노무현 정부를 향한 쏟아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
특히 정부기관 출입처 제도의 개혁, 신문시장 개선 등 참여정부가 언론 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조선과 동아 등 족벌언론은 거세게 반발했다. 노무현의 언론개혁을 ‘언론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하고 맹공격했다.
▲ 노무현 언론 정책을 반대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
군사독재가 무너진 이후에는 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여 시민과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특권과 반칙의 구조를 해소하는 것은 이 시대의 역사적인 과제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정통성 있는 정부라면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언론이 정확하고 공정한 언론, 책임 있게 대안을 말하는 언론, 보도에 책임을 지는 언론이 될 때까지, 그리고 스스로 정치를 지배하려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시민의 권력으로 돌아가고, 사주의 언론이 아니라 시민의 언론이 될 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 노무현 2007년 1월 24일 신년연설
8. 이명박 청와대가 분석한 언론 관련 정책의 실패 요인은?
이명박은 확실히 배웠을 것이다. 족벌언론과 싸워선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비판하는 촛불 집회로 사면초가에 몰린 이후엔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족벌언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008년 8월 28일,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 보고할 문건을 작성한다. 제목은 <지난 10년 간의 정책 실패 사례>이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분야 정책 실패 사례를 종합하고, 그 실패 요인을 분석한 자료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소속 국책과제비서관실에서 작성했다. 모두 5쪽 분량이다.국책과제비서관실은 대운하,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 조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 2008년 8월 작성 대통령 기록물 <지난 10년 간의 정책 실패 사례>
이 문건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3페이지에 나온다. 지난 10년간 정책 실패의 이유로 <언론과의 대립구도>를 제시한 대목이다. 언론 관련 실패 요인으로 3가지를 언급하는데 ▲ ‘언론에 대한 공격적인 언행’ ▲ ‘부처 기자실 폐쇄로 언론의 취재자유를 제한’ ▲ ‘언론보도 대응 실적을 부처업무 성과에 반영’이다. 노무현이 추진했던 언론개혁 정책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언론의 대한 공격적인 언행으로 3가지를 자세히 예시했는데, ▲“언론은 흉기처럼 사람을 상대하고 다니는 불량식품” ▲ “언론과의 전쟁 선포도 불사” ▲ “몇몇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 등 과거 노무현의 발언을 직접 거론하고 있다. 언론개혁의 열망이 담긴 노무현 특유의 화법을 정책실패의 요인으로 분석한 것이다. 노무현은 함량 미달의 가짜뉴스 등 불량 상품을 계속 생산해도 도태되지 않고 오히려 사세를 확장하는 언론 현실을 비판했다. 또 출입처가 주는 보도자료 베끼기에 급급한 폐쇄적인 기자실 운영 실태를 지적했다.
그러나 이명박의 청와대는 이를 족벌언론에 대한 ‘공격적인 언행’으로 규정하고 ‘언론 자유의 탄압’이라는 족벌언론의 주장에 동조하며 언론정책의 실패의 요인이 됐다고 분석한 것이다. 이같은 분석 논리의 귀결점은 자명하다. 족벌언론의 입맛에 맞는 친화적인 언론 정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 2008년 8월 작성 대통령 기록물 <지난 10년 간의 정책 실패 사례> 3쪽
이 문서는 이명박 집권기간 생산된 대통령 기록물 가운데, 비공개였다가 공개로 분류한 34만 건의 기록을 조사하던 중 뉴스타파가 찾아낸 것이다. 이명박의 언론 정책이 왜 '프레스 프렌들리'로 갔는지, 이 과정에서 조선과 동아, 두 족벌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선과 동아가 권력의 앞잡이에서 언론권력으로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작동기제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9. 족벌언론의 '전리품' - 사주의 사면과 종편의 획득
청와대가 이 문건을 작성하기 13일 전인 2008년 8월 15일 이명박은 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한다. “광복 63주년과 건국 60주년을 맞아 경제 살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화합과 동반의 시대를 열기 위해 정치인, 경제인, 생계형 민생사범 등 34만여 명을 특별사면”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특별사면 명단에는 족벌언론사 소속 인사도 포함됐다. 김병건 (전 동아일보 부사장), 조희준 (전 국민일보 사장), 송필호 (전 중앙일보 대표이사), 이재홍 (중앙일보 경영지원 실장)과 함께 방상훈 (현 조선일보 사장)도 있었다.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2006년 6월, 대법원은 회삿돈을 횡령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 등)로 방상훈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정권 차원의 언론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유죄의 증좌는 명백했다.
조선일보 사주 방상훈은 유죄 확정으로 신문법에 따라 집행유예 기간 동안 신문 발행인, 편집인을 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의 특별사면을 받게 되면서 복귀하는 데 걸림돌이 사라졌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났다. 두 전직 대통령, 이명박과 박근혜 사면 논란이 불거졌다. 조선일보는 2021년 1월 사설을 통해 두 사람의 사면을 촉구했다. 13년 전 특별사면 받은 ‘보은’의 차원으로 해석하는 건 억측일까.
▲ 조선일보 사설 (2021년 1월 2일)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종편 탄생의 길을 열었다. 다시 1년 뒤인 2010년에는 TV조선, 채널A, JTBC, MBN 등 4개사에 종편을 허가했다. 종편은 이명박과 족벌언론이라는 두개의 권력이 유착하는 과정에서,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얻어낸 수많은 ‘전리품’ 가운데 하나였다. 종편사업은 족벌언론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정연주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나 중앙일보가 정권에 굴복을 했다고 생각을 안 해요. 어느 시점 이후에는 스스로 권력 집단이 되어가지고 그런 강자의 권력을 대변하고 기득권의 논리에 이념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기지가 된 거예요. 그거는 요새 ‘정치검찰’이 권력의 개라는 소리 안 하잖아요. 권력의 앞잡이라고 이야기 안하잖아요. 스스로 권력이 되어 있잖아요. 검찰하고 저는 똑같다고 봐요. 조중동은 어느 시간 이후에 특히 자기들이 엄청난 언론 자본을 형성한 이후에는 완전히 기득권 세력의 중심부가 되버렸어요. 특히 종편까지 가진 이후에는 판이 더 커져버렸어요.”
- 정연주 동아일보 해직기자, 전 KBS 사장
이명박 청와대가 남긴 수십만 쪽의 대통령 기록물은 언론권력 (족벌언론)이 정치권력 (대통령)을 넘어 위세를 휘두르는 수단이 무엇인지, 수구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권력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 정치 영향력 확대와 이윤 추구를 향한 족벌언론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하기 위한 '언론 개혁' 없이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